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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한국보다 더 뜨거운 ‘비트코인’ 열풍이 불고 있는 이유

icon view4627 2021-05-31

불과 10년 전만 해도 비트코인은 1만 개가 피자 한 판에 팔렸을 정도로 헐값이었지만 지금은 비트코인 1개로 테슬라 자동차 1대를 사고 남을 정도로 가치가 높아졌다. 최근 한국에서는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화폐가 하룻 동안 14조 원 넘게 거래됐다. 같은 날 코스피 거래금액은 12조9576억 원, 코스닥 거래금액은 11조 2076억 원이다. 암호화폐 거래대금이 주식시장 거래액을 뛰어넘은 상황이다.

베트남 비트코인
물론 최근에는 하락세를 보이나, 이미 사람들은 폭발적인 재상승을 경험한 바 있다.

암호화폐는 그간 정부와 시장으로부터 계속 불신을 받았다. 처음에는 폰지 사기와 비교되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17세기 네덜렌드에서 일어난 튤립사기와 비교되기도 했다. 하지만 온갖 난관을 뚫고 암호화폐는 시장에 안착하고 있는 모양새다. 전 세계 기관 투자자들도 이제 비트코인을 하나의 헤지(Hedge)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유동성이 넘쳐나는 요즘 같은 시기에 비트코인의 가치가 상승하는 것은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난 3월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스태티스타(Statista)는 암호화폐를 사용했거나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국가별로 어느 정도 되는지를 따져봤다. 흥미로운 것은 베트남이다. 온라인 금융 결제 시스템도 아직 활발하지 않은 베트남이 전체 조사대상 국가 중 2위를 차지했다. 쉽게 말해 국민 100명 중 21명이 암호화폐를 사용했거나 지금 가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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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국가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암호화폐 전문 언론인 ‘비트코인 닷컴’은 나이지리아와 베트남 등에서 왜 암호화폐 사용률이 높은지를 분석했다. 1~2위를 나란히 차지한 나이지리아와 베트남에는 공통점이 있다. 상대적으로 낮은 자국 임금 때문에 외국으로 나가는 노동자가 많고 또 금융 시스템이 아직 잘 갖춰지지 않아서 민간이 금융기관을 이용하는 비율이 낮다는 점이다.

베트남에서 은행 계좌를 보유한 사람은 전체의 30%에 불과하다. 심지어 신용카드 보급률은 여전히 한 자릿수다. 원래 금융 시스템은 자본시장이 성숙하면서 같이 발전한다. 하지만 베트남은 아세안 국가 중에서도 유독 별나다. 같은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는 이웃 나라 태국 등과 비교해서도 계좌보급률 등에서 크게 차이 난다.

​여기에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 베트남은 지난 1955년부터 20여 년간의 내전을 거치며 오랜 기간 발전을 멈추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문제가 있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공산주의 정권은 은행에 입금된 예금 계좌를 몰수하고 화폐개혁을 단행하는 등 조치를 취했고, 그 결과 금융기관은 신뢰를 크게 잃게 되었다.

​이런 불신은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 수 있다. 계좌에 돈을 넣어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신뢰가 누적된다면 말이다. 그러나 베트남 은행에는 지속해서 사고가 발생했다. 은행 직원이 계좌에 있는 돈을 빼어가고, 그 책임을 은행이 제대로 지지 않은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이런 사고는 잊힐 때면 한번씩 반복되었고 은행의 대한 신뢰는 요원한 일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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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축구 베팅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은행직원이 절도를 저지르는 일도 있었다.

현지에서는 은행을 쓰지 않으면 된다. 문제는 외국에서 일하는 베트남 노동자들이었다. 현금다발을 들고 입국하지 않는 이상 무조건 은행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이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탐탁지 않은 일이었다. 계좌를 만드는 것 자체도 매우 번거로운 일이었다. 온갖 서류로 자신이 이 계좌를 투명하게 사용할 것을 증명해야만 발급이 가능했다.

그러던 와중에 암호화폐라는 신문명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은행 없이도 해외에서 돈을 보낼 방법이 생긴 것이다.

베트남 입장에서, 은행보다 편리한 ‘비트코인’

암호화폐의 이점은 이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은행으로 입금할 경우 각 은행에서의 송금 수수료, 베트남 현지에서의 출금 수수료가 붙는다. 국경이 없는 암호화폐는 송금 수수료보다 낮은 거래 수수료만 수취하기에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적다. 여기에 실제 비트코인 등을 이용해 송금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암호화폐를 이용하는 숨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내가 얼마를 버는지 나라에 알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자금을 축적할 수 있다는 점은 암호화폐의 숨은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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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비트코인 ATM 머신

그러나 이런 ‘우회로’는 개인에게는 이득일지 몰라도 정부 입장에서는 아니다. 베트남 정부는 암호화폐에 대해 계속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베트남 중앙은행은 비트코인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한 지난 2017년 “비트코인을 포함한 각종 가상화폐를 합법적인 지불수단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암호화폐가 국가의 발권력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조세회피나 불법 거래 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 3월에도 베트남 국가증권위원회(SSC)는 다시 한번 암호화폐에 대한 경고를 보냈다. 기업, 증권사, 펀드운용사, 투자펀드에 암호화폐에 대한 거래와 중개 서비스를 제공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강경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서 비트코인은 생각보다 빠르게 사람들 가운데 안착했다. 비트코인으로 결제를 받는 상점들이 속속 생겨났으며 비트코인을 거래할 수 있는 자동입출금기(ATM)도 설치됐다. 일부 택시는 암호화폐를 기반으로 요금을 지불받는 시스템을 설치했다. 심지어 베트남 내 한 대학은 수업료를 비트코인으로 받으려다가 정부의 지적으로 보류한 일도 있었다.

금융 장벽 낮춰 비트코인과 싸우려는 베트남 당국

​베트남 산업무역부가 2016년에 내놓은 ‘현금 없는 지불을 위한 개발계획’ 에 따르면 베트남은 2020년까지 전체 결제수단 중 현금의 비율을 10% 미만으로 낮추고 또 카드 지불수단을 ATM 및 POS 기계의 보급을 늘려 거래 건수를 2억 건 달성할 계획을 세웠다. 또 2025년까지 성인 인구 80% 이상이 은행 계좌를 보유하고 동시에 성인 인구의 최소 25~30%가 신용 기관에 예금/저축을 보유한다는 목표를 정해놨다. 하지만 앞선 목표는 달성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은행에 대한 거부감을 표했고 계좌 만들기를 꺼렸다.

이에 지난 3월, 베트남 정부는 결제의 편의성은 높이면서 계좌는 만들 필요가 없는, 새로운 전자결제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을 밝혔다. 소위 ‘모바일 머니’라고 불리는 이 사업은 전자지갑과 기본적인 개념은 비슷하다. 돈을 충전하고 휴대폰를 통해 물건을 구입하거나 송금을 하는 것.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모바일 머니 충전소에서 현금을 지불하고 충전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은행 계좌가 없이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모바일지갑이 성공적으로 안착한다 해도 비트코인을 통한 송금 등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모바일지갑은 해외거래도 되지 않고 월간 거래 금액이 1000만 동(우리 돈 50만 원)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학습효과를 심어주기엔 충분하다. 불편한 현금 거래 대신 전자결제 시스템이 활성화된다면 베트남에서의 각종 거래는 이전보다 훨씬 더 투명하게 이뤄질 것이다. 베트남 당국이 과세할 수 있는 대상 또한 늘어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은행이 어느 정도 신뢰를 확보한다면 계좌를 개설하고 은행 거래를 이용하는 사람도 늘어나게 될 것이란 게 베트남 당국의 계산법이다.

베트남 비트코인
정부 차원에서 보급에 힘쓰고 있는 ‘모바일 머니’

베트남의 결제 시장을 공략하려는 기업들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베트남에서 활동하는 핀테크 기업 중 98%가 결제 솔루션 분야를 공략하고 있다. 다른 아세안 국가에서는 보이지 않는 흐름이다. 열악한 베트남의 결제 환경이 오히려 ‘블루오션’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미 모모페이나 잘로페이를 비롯한 여러 결제 솔루션이 실생활에서 사용되고 있다. 앞서 설명한 모바일 머니 또한 정부가 직접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자를 모집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만 베트남 결제 사업에 외국인이 뛰어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원천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나 허가가 워낙 까다롭기 때문에 사업을 시행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사업자들이 대다수다. 그러나 베트남 당국은 이런 핀테크 기업에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하는 것까지 제한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선진적 핀테크 기술을 보유한 나라가 현지 핀테크업계에 투자하고 제휴를 맺는 방식으로의 사업 참여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암호화폐라는 신문물은 낙후된 베트남 금융 시스템 속에 빠르게 스며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 정부는 암호화폐를 ‘표면적으로는 금지’하지만 실제로는 방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마주했다. 암호화폐를 둘러싼 많은 불안정성을 극복하고 베트남이 지금의 상황을 금융 혁신을 위한 성공적인 촉매로 활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VEYOND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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