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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호찌민 여행지 추천, 다크 투어리즘 ‘구찌터널’

icon view4716 2022-03-01

 

지난해 9월, 호찌민시 인민위원회는 구찌터널(Địa đạo Củ Chi)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구찌터널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을 공격하려고 베트콩*이 만든 지하 3층 규모의 땅굴이다. 구찌터널은 온전히 도끼와 호미로만 판 지하 굴이라는 점에서 베트남 사람들이 가진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건축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북베트남의 지원을 받아 1960년 12월 20일 결성되어 남베트남 및 미국과 전쟁을 치른 베트남민족해방전선(Vietnamese National Liberation Front:NLF) 소속으로 정식명칭은 Viet Nam Cong San, 베트남공산주의자(Vietnamese Communists)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구찌터널은 역사적 특수성은 물론, 문화적·과학적 가치도 인정받아 2015년 12월에는 국가문화유적으로 지정되었다. 현재까지도 학생들의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장소이다.

어쩐지 스산한 느낌을 주는 구찌터널

베트남에게 승리를 가져다 준 구찌터널

구찌터널은 1948년, 1차 인도차이나전쟁 때 처음 사용되었다. 당시 베트남은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 이 터널을 만들었다. 그 때는 지하 1층 정도의 깊이로 만들어졌지만, 이후 미국과의 전쟁 시에는 약 3~8m 정도의 깊은 터널로 변형되었다.

구찌터널 구조(출처: WIKIMEDIA COMMONS)

미국은 베트남과 전쟁을 하면서 많은 고초를 겪었다. 특히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베트콩들의 습격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고 하는데, 베트콩들은 구찌터널을 통해 공격을 했기 때문이다. 구찌터널은 약 250km 정도로 길게 형성되어 있었으며 터널이 흡사 미로처럼 복잡했다. 터널의 통로는 가로·세로 약 80cm 정도로 협소해 베트남인들보다 비교적 체구가 큰 미국인들은 진입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이에 미군은 몸집이 작은 병사들로 구성된 ‘땅굴 쥐 부대(Tunnel Rats)’를 만들고 구찌터널로 직접 침입시켰다. 하지만 구찌터널의 입구와 내부에 각종 부비트랩은 물론 죽창, 독사, 전염병을 옮길 수 있는 쥐, 거미, 전갈 등이 많아 진입에 어려움이 많았다. 또한, 내부에 성공적으로 들어갔다 하더라도 터널 안의 덥고 습한 환경과 무기 사용이 제한되는 등의 이유로 큰 성과를 보기란 어려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땅굴 쥐 부대의 자원자 수가 줄어들었고, 이에 미군은 독일 군견을 앞세워 터널의 입구를 찾아내 구찌터널이 포진된 곳에 폭탄을 대거 투하하고, 고엽제를 살포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군이 유일하게 패배한 전쟁이었다.

구찌터널 부비트랩(출처: WIKIMEDIA COMMONS)

다크 투어리즘으로 각광받는 구찌터널

구찌터널은 베트남 전쟁에서 북베트남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라 할 수 있다. 베트남 전쟁이 땅굴 전쟁으로 불리는 이유다. 현대에 이르러 구찌터널은 호찌민시 주요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최근에는 전쟁이나 학살 등 잔혹한 참상이 벌어진 역사적 현장 등을 돌아보는 여행인 ‘다크 투어리즘’으로 각광받고 있다.

다크 투어리즘은 과거사에 대한 성찰 및 인권적 가치 확립을 목적으로 활성화되었다. 참혹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곳을,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좀 더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 아닌데도, 현장에 간 사람들은 숙연해진다. 장소에서 일어난 일들을 차근히 짚어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거나 안내 푯말을 읽으며 과거 참상에 대한 애도와 함께 인권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을 하게 된다.

다크 투어리즘은 역사에 대한 실체를 파악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실제 구찌터널을 방문한 사람들이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구찌터널의 규모이다. 지하에 설치된 땅굴인데도 회의실, 의무실, 무기저장실, 수술실 등이 모두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하도시라 불리기도 한다.

구찌터널 모형(출처: WIKIMEDIA COMMONS)

구찌터널을 직접 들어가거나 주위에 설치된 부비트랩을 보며 사람들은 베트남 전쟁 당시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처음에는 그저 환경의 열악함에 경악하다가 점차 전쟁의 참혹함을 체득하게 된다. 구찌터널과 같은 전쟁 유적을 보존하고, 성찰의 장으로 남겨야 하는 이유다.

구찌터널과 같은 역사적 장소가 주는 가치

구찌터널은 더이상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던 1960년대에 머물러있지 않다. 21세기의 구찌터널은 그곳을 방문하는 학생들에게 평화 교육을 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일반 베트남인들에게는 자긍심을 주고, 또 외국 관광객들에게는 전쟁의 참담함을 체득할 수 있게 한다. 과거 베트남인들의 투쟁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 인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필자는 이 말을, 역사를 ‘지식’으로만 인지하기보다 일상에 녹여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 생각한다.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교과에서만 만나 볼 수 있는 현장보다 일반인들이 원활하게 소통하며 직접 살펴보고 그 가치를 일깨우는 현장이야말로 역사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비록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관광이 어려운 시점이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엔 더 많은 사람이 구찌터널을 방문해 베트남의 역사를 직접 경험하길 바란다.

ⓒVEYOND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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