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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을 알기 위한 두 가지 키워드 : 지리와 역사

icon view6438 2022-04-19

한국에서 베트남이란 국가는 여행가기 좋은 곳,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는 개발도상국, 과일이 맛있는 곳 정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또한 한국정부는 신남방정책을 통해 베트남과 협력을 추구하며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을 지원하는 등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지고 있는 베트남에 대한 인식은 주로 경제와 관광에 집중되어 있다. 베트남의 역사와 군사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베트남’과 ‘군사’라는 키워드의 결합은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베트남전쟁을 떠올리게 하며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얼마나 잘 싸웠는가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게 할 뿐이다. 또한 한국이 세계 6위의 군사강국임을 감안하면 20위가 넘어가는 베트남이 강력하게 느껴지지 않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다만, 호랑이가 없는 곳에서는 여우가 왕 노릇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동남아시아에서 베트남은 가히 동네대장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베트남 사람들이 스스로를 미국과 프랑스 등 강대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강력한 국가로 인식하는 걸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베트남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출처: 구글지도

유럽에 영국과 프랑스가 있다면, 동남아시아에서는 태국과 베트남이 있다

일반적으로 동남아시아라는 개념은 태국, 베트남, 미얀마 등이 있는 인도차이나반도의 육상지역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이 있는 해상지역 그리고 마지막으로 필리핀이라는 3개의 지역을 묶어서 부르는 것이다. 이 3개의 지역은 지리적으로는 묶여있으나 실질적으로 별도의 문화권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역사적으로 상호교류 역시 적다. 다만, 본 글에서는 가독성을 위해 인도차이나반도의 육상지역을 동남아시아로 명칭함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

베트남인들의 민족적 자부심은 일견 허세로 보일 수도 있으나 실제로 베트남의 쌓아온 역사와 그들이 속한 지역에서는 강국이라는 점에 근거한다. 따라서 본 글은 베트남이 어떻게 동남아시아에서 강국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과 현대의 베트남이 걱정하는 국가적 위협에 대해 간략히 다루고자 한다.

중국, 라오스, 캄보디아와 국격을 마주한 베트남(출처: 한국무역신문)

1. 길게 늘어진 국토로 인한 실질적 분단

베트남은 중국과 라오스, 캄보디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며, 가장 특이한 점은 남중국해를 따라서 국토가 길게 늘어져있다는 것이다. 수도는 북부의 하노이지만 유명한 관광지들은 중부의 다낭 및 호이안이고 경제수도는 남부의 호치민이라는 특징이 있다. 북부와 중부, 남부는 지역간 차이가 상당하기에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장기여행이 아닌 이상 하나의 지역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라오스와의 국경과 가까울수록 험준하다(출처: 구글지도)

우선, 수도인 하노이가 있는 베트남 북부는 총인구 9,400만 중 25%가 사는 핵심지역이다. 수도답게 베트남이라는 정체성이 시작된 곳이며 남부의 호치민과 더불어 국가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다. 위 사진에서 보이듯이 하노이와 하이퐁과 같은 도심지는 옅은 녹색이지만 라오스와의 국경으로 갈수록 미개발상태의 정글과 험준한 산맥으로 인해 육로교통이 지극히 제한된다. 교통이 불편하다는 점은 경제적으로는 마이너스 요소지만, 군사적으로는 외부로부터의 대규모 침략을 막아주는 플러스 요소이다. 따라서 베트남은 험준한 산맥을 바탕으로 서부의 침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베트남의 잔다르크로 불리는 국민 영웅 ‘쯩자매'(출처: Wikimedia Commons)

베트남에 가해지는 가장 큰 위협은 북쪽의 중국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단군왕검에 해당되는 ‘쯩자매’가 중국(당시 한나라)과 시작한 독립전쟁으로 베트남의 역사가 시작된다. 전쟁에서 승리한 베트남은 더 이상 중국의 일부가 아닌 베트남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독립을 했지만, 중국은 베트남의 독립과 함께 많은 영토를 잃었기에 이를 인정할 수 없었다. 따라서 다시 베트남을 정복했으며 베트남이 실질적으로 중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것은 천 년이 지난 10세기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독립 이후에도 국가의 생존을 위해 중국과 끝없는 전쟁이 계속되었으며, 프랑스가 베트남으로 오기 전까지 베트남의 역사는 중국과의 전쟁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남만(남쪽의 이민족=베트남)은 존재 자체가 위협이었고, 동이(동쪽의 이민족=한반도)와는 달리 정복했을 경우 풍부한 남방의 물자를 얻을 수 있었기에 중국의 남만 정벌은 나름대로 수지타산이 맞는 사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의 입장에서 보면 이유 없이 수천년을 괴롭히는 이웃국가였고 이러한 역사는 지금까지도 베트남의 대중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침략의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베트남은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힘이 필요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국력이란 인구와 농토였으며 북쪽은 중국, 서쪽은 산맥으로 막혀있는 상황에서 베트남 민족은 생존을 위해서 남쪽으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다.

서쪽으로 안남산맥이 자리해 남쪽으로의 영토 확장은 불가피했다(출처: 위키백과)

다낭과 호이안이 있는 베트남 중부까지도 안남산맥으로 인해 서부로의 진출이 불가능하니 필사적으로 남쪽으로 영토확장을 추진했고 약 1000년에 걸쳐서 최남단의 호치민으로 대표되는 메콩강 삼각주에 도달하게 되었다. 물론 베트남의 입장에서야 진출이고 원래 메콩강 삼각주를 가지고 있었던 캄보디아 입장에선 강대국의 횡포에 불과하겠지만. 메콩강 삼각주는 기후가 온난하고 물이 풍부해 3모작이 가능할 정도로 물산이 풍부한 지역임과 동시에 메콩강과 바다에 접해있기에 주변과의 교류도 유리한 곳이었다. 그래서 수도 하노이를 뛰어넘는 더 큰 경제력을 가진 베트남의 심장부로 발전하게 된다. 현재 호치민은 베트남 경제력의 1/3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공업시설 역시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베트남은 경제는 남부의 호치민, 정치와 군사는 북부의 하노이로 양분되어 있다

베트남은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상당히 높기에 중국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고 대중의 반중감정과 달리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북부의 하노이의 경우 중국과 가깝다는 이유 때문에 천 년 넘게 중국을 경계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군사력을 중시하고 보수적인 경향을 가질 수밖에 없다. 반면 호치민의 경우 주변국으로부터 군사적 위협이 없기에 경제에 전념할 수 있으며 북부에 비해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다. 게다가 호치민을 중심으로 한 남부지역은 정복한 지 이제 200년이 조금 넘은 곳이기에 여전히 북부와 인종 및 언어적 차이를 보이며, 문화적으로도 북부는 중국의 영향으로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하고 남부는 동남아시아 문화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 베트남전쟁으로 인해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무력정복하고 당시 남베트남의 수도였던 사이공을 북베트남 지도자의 이름인 호치민으로 바꾸기까지 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당시 남베트남의 인민들은 북베트남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지는 않았지만 환영하지도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부와 남부가 정서적으로 단합되어 있지는 않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산맥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히 북부와 남부가 정서적으로 분리되어있는걸 넘어 실제로 자연환경 역시 분리되어 있다. 베트남 중부는 그 폭이 굉장히 얇은데다가 소수민족들이 사는 산악지대로 구성되어 있어 국가의 허리는 굉장히 취약한 편이다. 북부와 남부의 양대 심장지대가 가지는 이러한 차이성은 지속적으로 베트남 지도자들의 고민거리가 되었다.

2. 베트남의 근대사는 전쟁의 역사

다시 산맥지도를 보면 또 하나 특이한 점이 있다. 북부와 중부는 산맥으로 인해 라오스와 차단 되어 있지만 남부와 캄보디아의 국경지대에는 자연적인 장애물이 없다. 이렇게 국경이 인접한 국가들끼리는 보통 사이가 좋지 않으며 베트남과 캄보디아 역시 마찬가지다. 게다가 원래 베트남 남부가 캄보디아 땅이었음을 생각하면 당연한 사실일 것이다. 베트남전쟁에서 베트남은 미국의 폭격을 피하기 위해 라오스와 캄보디아 영토를 통해 군사작전과 보급을 실행했다. 미국 역시 베트남의 영토가 아니지만 보급을 끊기 위해 라오스와 캄보디아에 폭격을 가했고 전쟁당사국이 아님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물론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이러한 상황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베트남이 강국이었기에 자신을 지킬 힘이 없었던 것이다.

베트남전쟁이 끝나고서도 인접국에 대한 베트남의 태도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라오스는 워낙 산악지대였기에 인구가 적고 경제력이 낮아 크게 견제하지 않았으나, 캄보디아의 경우 군사적으로 위협적이라고 판단이 되자 캄보디아를 침공해 점령하고 꽤나 오랜 기간동안 괴뢰국을 세워 베트남의 안전을 도모하기도 했다. 또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은 중국이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잃게 만들었기에 중국을 크게 자극했고 결과적으로 중월전쟁이 터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도 베트남은 사실상 승리를 거두었고 마침내 프랑스와의 독립전쟁, 미국과의 통일전쟁, 캄보디아 침공, 중월전쟁이라는 기나긴 전쟁을 끝나고 베트남은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일시적 해방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라오스와 캄보디아에게 좌우의 태국과 베트남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친중국가로 돌아서는 동기를 제공했고, 이로 인해 현대에 이른 베트남은 또다시 위협을 느끼게 된다.

3. 베트남의 현재상황과 전략

캄보디아와 라오스가 친중국가가 되었기에 베트남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으로부터 포위당했다는 위협이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은 [3 NO] 정책을 선언했다.

  1. 군사동맹에 참여하지 않는다.
  2. 베트남의 영토에 외국군사기지를 설치하지 않는다.
  3. 외부세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자주국방을 실현하려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정책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지키기에는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베트남도 [3 NO] 정책을 엄격히 지키기보다는 실정에 맞게 유동적으로 행동하는 편이다.

중국이 남중국해로의 진출을 시작했기에 베트남으로서는 동쪽으로부터의 공격도 준비해야만 하고, 중국입장에서도 남중국해 진출에 방해될 ‘현지’ 국가는 베트남이 거의 유일하기에 중국-베트남간 분쟁은 점차 격화될 것이다. 즉, 베트남은 남부를 제외하면 중국에 포위당해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적대세력이 베트남 중부에 진출하는 순간 베트남은 쉽게 양분될 것이며 베트남의 정치지도자들은 이를 가장 걱정하고 있다. 이렇게 취약한 중부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정공법인 해군기지와 같은 인프라 설치를 통해 강화할 수 있지만 사실 더 빠르고 쉬운 방법이 존재한다.

국토가 너무 얇아서 분단의 위협이 있다면 두껍게 만들면 해결될 일이지 않은가? 그리고 해군력강화를 통해 방어하기에는 베트남의 경제력이 아직까지 부족하고, 설령 무리해서 해군을 강화하더라도 중국해군과 맞설 수준까지는 아니다. 의지의 문제가 아닌 국가체급의 차이 때문에 애초에 불가능하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육군을 강화해서 서부로 팽창하는 것이다. 서부로 팽창하면 서부의 위협을 제거하면서 동부의 바다로부터 오는 국토분단의 위협에도 방어할 여유가 생길 것이 아닌가?

당연하게도 라오스와 캄보디아 역시 이렇게 생각하기에 더욱더 친중국가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역설적인 상황이다. 베트남은 라오스와 캄보디아가 친중국가라서 위협을 받아 팽창을 생각하지만,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베트남으로부터 팽창의 위협을 받기에 친중국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어찌되었든 베트남은 해군증강이 제한되고 서부로의 팽창은 역효과의 가능성이 크니 현실적인 방법은 베트남의 소프트파워를 키우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베트남이 비교적 거대한 경제력으로 라오스와 캄보디아에 경제적 이득을 주고 베트남문화에 많이 노출시켜 적대감을 줄이는 방식으로 친중국가일 필요가 없도록 라오스와 캄보디아에게 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두 국가를 베트남과 중국에 대해 중립상태로 만들어야 서부로부터의 위협을 줄일 수 있다.

남중국해 중국 군사기지 현황(출처: 서울 퍼블릭 뉴스)

그리고 중국으로부터의 위협은 사실 미국 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 단순히 베트남이 미국 편에 서서 반중전선에 합류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지렛대 삼아 중국과 베트남이 적절한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베트남의 경제는 중국에 강한 영향을 받고 있고 무엇보다 미국은 멀지만 중국은 가깝다. 앞서 언급한 [3 NO] 정책에 의해 미국-베트남 간의 군사동맹도 없고 미군기지도 없다. 그러니 미국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3 NO] 정책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고 베트남-미국-중국이라는 삼각관계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아야만 할 것이다. 또한 중국해군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미국 외에도 인도나 호주, 일본 심지어 러시아라는 선택지도 가능하니 전략적 유연성을 위해 베트남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기대된다.

베트남의 역사는 중국과의 전쟁사나 다름 없고 반중감정이 가장 심한 나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베트남은 중국을 적대해서는 생존할 수 없다. 베트남은 중국을 적대하거나 중국에 굴복하는 상황보다는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협력과 공존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상호존중을 추구하는게 쉬운 결정은 아니겠지만 베트남으로서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미중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은 남중국해로 진출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 모두 베트남에게 자신의 편이 되라고 제안하고 있지만 베트남으로서는 어느 쪽의 손도 잡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러나 어느 쪽의 손도 뿌리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베트남은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베트남에 관심이 있다면 향후 베트남의 결정과 행보는 상당히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베트남 역사의 시작은 중국과의 독립전쟁이었다. 그 후 천 년 넘게 민족의 생존을 위해 외세와 맞서 살아남은 베트남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민족적 자부심이 대단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국사람들이 베트남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쩌면 베트남 사람들의 이러한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

글쓴이 차태호
베트남이 좋아서 베트남에 대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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