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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도 안쓰는 베트남에 한국 금융사가 진출하는 이유

icon view1502 2020-08-05
Veyond 매거진

손꼽히는 금융 불모지, 베트남

베트남은 전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은행이 안되는 곳’이다. 카드는 물론이고 계좌조차 없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전체 국민 중 은행 계좌를 보유한 사람이 30%를 겨우 넘고 신용카드 보급률은 3%대에 머물고 있다. 단순히 베트남이 ‘개발도상국’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인근 지역 아세안 개발도상국들의 은행 계좌 보유 비율은 보통 60%를 넘는다. 베트남의 이런 특수한 상황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베트남의 근대사를 살펴보면 그 정답을 알 수 있다.

베트남은 1955년부터 1975년까지 남북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현재의 베트남 정권은 사회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토지와 예금 등을 국유화했다. 여기에 1985년에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는데 이 화폐개혁마저 실패하며 물가가 폭등했고 시민들은 큰 혼란을 겪었다. 전쟁, 재산 몰수, 실패한 화폐개혁까지. 이 모든 악재를 연이어 겪은 베트남 사람들의 머릿속에 돈은 온전히 ‘스스로 지켜내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베트남의 금융산업은 여전히 정체된 상태다. 심지어 지금도 베트남 곳곳에는 금고를 파는 상점이 있다. 부유한 집은 집안 곳곳에 금고를 배치해 현금과 현물을 보관한다.

베트남 전쟁 당시 사진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을 남긴 베트남 전쟁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금융 시스템. 체질 개선이 시급했던 베트남 정부는 지난 2016년에 ‘현금 없는 사회’를 선포했다. 2020년까지 현금결제 비중을 전체 대비 10% 이하로 낮추고, 은행 계좌를 보유한 인구 비중을 현재 30%대에서 70%대로 높이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베트남 정부의 야심찬 계획은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미한 수준의 개선은 이뤄졌지만 여전히 베트남의 상거래는 현금이 지배하고 있으며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은 은행 대신 전당포에서 돈을 빌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이 베트남에 가는 이유

이런 상황임에도 한국의 금융기업들은 베트남 금융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신한은행, 우리은행, 국민은행 등을 비롯한 국내 주요 은행들은 이미 베트남에서 자리를 잡고 영업을 하고 있으며 한화생명, 롯데카드, 현대카드 등 비은행 금융기업들도 베트남 시장 공략을 위해 나서고 있다. 투자 금액도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2340억, 2017년에는 1477억, 2018년에는 3482억을 투자했으며 앞으로도 투자 금액은 늘어날 예정이다.

국내 금융기업들이 베트남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결국에는 열릴 시장’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겉으로만 보면 베트남의 금융시장이 매우 척박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계좌를 만들고 새로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잠재 고객’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베트남 시내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
베트남 1억 인구가 잠재 고객인 셈이다

그 자리를 베트남 은행들이 차지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상황은 베트남 자국 은행보다 해외 은행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금융기업은 신용을 기초로 거래가 성사되는 산업이다. 그 신뢰를 담보하지 못한다면 누구라도 마음 놓고 돈을 맡길 수 없다. 그러나 베트남 은행들은 금융사고를 연례행사처럼 터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베트남 은행 직원들이 공모해 공서 위조 등을 통해 2000억 원 대의 사기행각을 벌인 것이 들통났다. 2017년에도 한 고객이 자국 은행에 예치해 둔 87억 동(약 4억 3,000만 원)이 모두 사라진 사건이 벌어졌지만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심지어 은행 간부들까지 횡령한 사건이 일어나 충격을 주고 있다.

결국 베트남 사람들은 ‘자국 은행에 돈을 예금해두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게 되었다. 은행이 가장 기본적인 약속인 ‘예금 보장’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다. 가장 기초가 되는 금융에 대한 불신은 현금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모든 거래를 불신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쇼핑몰 물건을 받은 다음에 현금으로 지불하는 독특한 Cash on Delivery 문화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베트남 금융의 시작, ‘자동차’

베트남의 오토바이 등록 대수는 2018년 기준 4600만 대를 넘었다. 한 가정에 한대 이상의 오토바이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대중교통이 아직 잘 갖춰지지 않았고 차량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는 서민들의 발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베트남 경제가 지난 5년간 매년 7%에 가까운 고공성장을 기록하면서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베트남의 2019년 베트남 자동차 판매량이 전년대비 19%가 증가하여 역대 최고치인 41만 9104대를 기록했다. 2014년 판매량(15만 7810대)과 비교했을 때 약 2.65배 늘어난 수치다. 우리가 차량을 구입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베트남 역시 할부를 통해 자동차를 구매한다. 그리고 할부 구매를 위해서는 기존의 현금거래가 아니라 신용 거래가 반드시 필요하다.

베트남 브랜드 빈패스트의 차량
자동차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베트남. 사진은 베트남 회사 ‘빈패스트’의 차량.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은행들도 자동차 할부에 주목하고 있다. 베트남의 1위 외국계 은행인 신한은행은 고객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베트남 국민 메신저인 잘로를 통해 신규 회원을 유치하고 있으며 베트남 간편결제 업계 1위인 ‘모모’와 제휴해 신용대출을 받고 있다. 베트남 2위 부동산 플랫폼 업체인 ‘무하반나닷’과는 담보대출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는 삼성전자와 함께 ‘삼성페이’ 선불카드 서비스를 추가로 내놨다. 모두 소매금융을 공략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다.

카드사들도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베트남 소비자금융 전문 회사인 ‘FCCOM’ 지분 절반을 인수하며 진출 준비를 마친 현대카드는 현대자동차와 연계하여 할부금융 시장의 문을 두드릴 예정이다. 한화그룹 또한 베트남 1위 민영기업 빈 그룹의 지분을 사들이며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화는 소액대출과 투자증권, 더 나아가 자동차 제조사업을 하고 있는 빈 그룹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손해보험, 자동차 할부 시장까지 그 영역을 넓힐 것으로 보인다.

동남아에 진출하는 한국 카드회사들
동남아에서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한국 카드회사들

결국 베트남도 ‘현금’을 버리고 ‘금융’으로 가야 한다

베트남 정부는 2019년부터 매년 6월 16일을 ‘현금 없는 날(Ngày không tiền mặt)’로 지정하며 현금 사용을 줄일 것을 장려하는 행사를 벌였다. 전기, 수도 요금 등을 온라인으로 납부하게 한 데 이어 올 3월 12일부터는 온라인을 통해 교통법규 위반 벌금을 납부 서비스를 개시하기도 했다.

베트남 정부의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2019년 12월까지 52개 시·성(province) 도시의 모든 학교 및 병원에 무현금 결제 솔루션(카드 리더기, 또는 QR 코드 스캐너, 전자결제 모바일 앱)을 마련하도록 지시한 바 있으며 일반 상점에서도 결제 솔루션을 도입할 것을 장려하고 있다. 또 2025년까지 성인 인구 80% 이상이 은행 계좌를 보유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성인 인구의 최소 25~30%가 신용 기관에 예금/저축을 보유하고 비현금 결제 또한 연간 20~25%씩 늘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QR코드 결제를 지원하는 베트남 은행
베트남 현지은행들도 QR코드를 통한 결제 지원을 시작했다

베트남의 이런 노력은 단순한 정책 목표에 그치지 않는다. 현금으로만 이뤄지는 거래 흐름은 정부에서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만큼 과세도 누락된다. 현금결제를 줄이고 모든 거래가 기록되는 비현금 결제를 늘리는 것은 베트남 정부 자체에서도 한시가 급한 당면과제다.

정부의 인프라 보급, 지속적인 소득 증가, 시장의 유인 등 여러 요소들을 고려했을 때 베트남의 결제시장 금융시장은 발전할 수밖에 없다. 한국 은행들이 ‘안되는 시장’인 베트남에서 꿋꿋이 버티고 있는 것도 이런 황금기가 조만간 찾아올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시장’은 미리 준비한 사람들에게 큰 결과를 주곤 했다. 베트남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한국 금융사들의 선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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