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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와 ‘한강’을 해외에 소개한 문학 매니지먼트의 다음 관심사는 ‘베트남’이다

icon view3150 2021-03-03
Veyond 매거진

2020년은 해외 무대에서 우리 문학의 저력을 확인한 해였다. 동화책 <구름빵>을 그린 백희나 작가가 최고 권위 아동문학상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랜상’을 수상했고, 일본에서 10만부 이상 팔린 손원평 작가의 장편 <아몬드>는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그뿐만 아니라 김이듬 시인의 <히스테리아>는 ‘전미번역상’과 ‘루시엔스트릭번역상’ 동시 수상을,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는 전미도서상 번역 부문 후보에 오르는 등 까다롭기로 소문난 영미권에서도 국내 작가들의 선전소식이 이어졌다. ‘K-문학’이라는 수식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아스트리드린드그랜상을 받은 백희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한 ‘구름빵’

이처럼 국내 문학 작가들이 BTS, 블랙핑크와 같은 또 다른 한류(韓流)의 주역으로 성장한 데에는 이구용 대표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이 대표는 국내 최초 도서 판권 수출 전문 에이전시 ‘KL매니지먼트’를 설립, 한국 문학의 불모지였던 해외 출판 시장에 처음으로 국내 작가들을 데뷔시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1996),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2008), 한강의 <채식주의자>(2007)를 프랑스와 미국, 영국에 진출시킨 장본인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대표와 K-문학이라는 글로벌 트렌드 사이에는 또 다른 연결고리가 있다. 바로 베트남이다. 그는 아시아권 나라들에서 ‘한류’라는 용어가 막 쓰이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베트남 현지에 방문해 한국 문학을 소개하고 있다. 이제는 국영방송 VTV가 ‘한류 콘텐츠 특집’ 방송을 직접 만들어 방영할 만큼 대표적인 ‘친한류 국가’가 된 베트남에서 한국 문학의 위치는 어느 정도일까?

​KL매니지먼트 사무실에서 이구용 대표와 만나 베트남의 출판 시장 현황과 비즈니스 전망에 대해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판권 매니지먼트라는 개념이 아직 국내에서는 낯선 것 같다. 국내 문학작품의 저작권 수출과 관련된 일을 주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존의 출판사와는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다른가.

판권 수출은 출판사에서도 이뤄지지만, 보통은 자사에서 출간된 책만을 대상으로 관리적인 차원에서 해당 업무를 겸하게 된다. 그에 비해 출판 저작권 에이전트는 보다 작품 자체를 중심으로, 불특정 다수의 다양한 책들을 관리하면서 해외시장에 소개하는 일을 한다. 때에 따라서는 특정 작가들을 직접 매니징(Managing) 하기도 한다. 특히 단순히 판권을 영업하는 일뿐만 아니라 후자의 업무도 겸한다는 점이 출판사와 가장 결이 다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의 맥락에서 보면 작가나 그의 작품도 결국은 하나의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이 잘 팔리게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한 권 한 권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 작품들을 쓰는 작가 자체의 캐릭터, 그리고 그가 생산해내는 문화 콘텐츠들을 브랜드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 시장성의 차원에서 봤을 때, 아무래도 국내 작가들의 경우 그렇게 글로벌 무대에 내세울 수 있는 브랜드 이미지가 아직은 구축이 덜 된 부분이 있다. 바로 그런 지점들을 더 효과적이고 전략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 작가 매니징(=브랜딩) 업무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

 

커리어를 시작한 ‘임프리마 코리아’에서 원래 해외의 문학작품들을 국내로 수입하는 일을 했다. 어떻게 국내 문학을 해외로 수출하는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됐나?

처음에는 비즈니스적인 맥락에서라기 보다, 그냥 막연하게 ‘우리 문화도 외국 사람들한테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던 것 같다. 에이전트로서 해외의 뛰어난 작품들을 국내에 들여오고 소개하는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역의 방향, 즉 ‘우리가 그들에게 우리의 것을 수출하는 일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나씩 현실화하고 구체화하다가 (국내 문학 작품의 해외 판권 수출) 비즈니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건 2000년이 지나면서부터다.

 

2011년 KL매니지먼트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국내 유수의 작가들을 해외에 소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해외에 수출한 작품만 2,000여 권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표적인 작품들을 소개한다면?

가장 첫 손으로 꼽는 작품은 단연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Please Look After Mom, 2008)>다. 2011년 영미권 출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41개국에 수출됐다. 가장 최근에는 마케도니아에도 판권이 팔렸는데, 이렇게 우리에게 조금은 낯설 정도로 먼 나라에까지 진출한 하나의 이정표 같은 작품이다.

​그다음 타자로는 익히 알려진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The Hen Who Dreamed She Could Fly, 2002)>,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 2007)>가 있다. 영미권이나 유럽 쪽은 문학을 중심으로, 아시아권에서는 비문학이나 아동문학 등 조금 더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폭넓게 소개 및 진출하고 있다.

한국 서적의 영문판 표지
1.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2.황선미, <마당을 나온 암탉> 3.한강, <채식주의자>의 영문판 표지.

 

직접 발굴한 작가가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까지의 전 과정이 궁금하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우선 내가 작품을 읽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정말 많은 책을 읽고, 그중 해외 독자나 현지 출판업계에서 관심을 가질 만하다고 판단되는 작품에 대한 영문 소개 자료(Readers Report)를 만든다. 해외 출판사의 담당 편집자에게 이 책이 어떤 작품인지 설명하는 A4 1~2매 정도 분량의 소개문을 쓰는 것. 그리고 실제 작품이 어떤 내용인지 볼 수 있도록 영문 샘플 번역을 준비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료를 가지고 해외 출판 관계자들에게 작품을 소개한다. 출판사 편집자에게 직접 소개하기도 하고, 때로는 현지에서 나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다른 출판 에이전시(혹은 에이전트)를 통해 연결 다리를 놓기도 한다. 그렇게 책에 관심을 갖는 출판사를 찾고, 계약이 이뤄지면 번역 등 출판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들이 진행된다.

 

수많은 책 중 ‘이건 팔리겠다’ 싶은 작품을 고르는 본인만의 기준이 궁금하다. 일단 문학 작품의 경우를 얘기해 본다면.

기본적으로 에이전트는 세 가지의 시선으로 작품을 읽게 된다. 첫 번째는 독자의 관점. 나도 결국 한 사람의 독자 아닌가. 가장 평범한, 일반적인 독자 입장에서 한 번 읽고. 두 번째로는 책이 가진 작품성과 예술성, 즉 얼마큼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는지를 평가하며 다시 읽는다. 그다음 마지막으로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책을 한 번 더 본다. 이 책에 관심을 갖고 판권을 계약할 해외 출판사의 입장에서 읽는 것이다. 이 책이 현지에서 번역 출판됐을 때의 시장성, 또 그 나라의 독자가 흥미롭게 얼마큼 흥미롭게 읽을지 등등의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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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 가지 축이 예민하게 교감할 수 있으려면 평소 다양한 나라의 시장 분위기, 현지 독자들의 성향 파악이 중요할 것 같다. 출장이 잦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출국이 어려워진 최근의 상황이 비즈니스를 준비하는 데 끼치는 영향은 없나

20년 가까이 에이전트 생활을 하면서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가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해외 판권을 수입해오는 일과 역으로 국내 작품을 해외로 수출시키는 일, 즉 문화 콘텐츠가 오가는 양방향의 흐름을 오랜 시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자연스럽게 데이터 베이스가 만들어졌다.

가령 해외에서는 어떤 작품이 노벨문학상이나 부커상을 받을 만큼 문학적으로 높게 평가받는지, 각 언어권 별로는 어떤 책들이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는지에 대한 것. 여기에 내가 직접 국내 작가의 작품을 해외 시장에 진출시키는 과정에서 겪었던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서 각 나라의 출판 시장 스타일과 독자 스타일에 대한 경험치가 쌓인 거다. 물론 항상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작품을 접할 때 이것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대략적인 예측이나 예상이 가능한 것 같다.

 

김영하, 신경숙, 한강, 황선미 같은 작가들이 유럽과 영미권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사실상 한국 문학 수출 1세대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의 성과를 얻기까지 어떤 전략을 통해 이들의 작품을 해외 시장에 어필했는지 궁금하다.

사실 국내에서 아무리 인지도가 높고 상을 많이 받은 밀리언셀러 작가라도, 다른 언어권의 독자들에게는 낯선 작가, 낯선 작품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서점에서 김영하의 작품을 만날 때 ‘김영하’라는 작가의 전작들과 그가 지닌 고유한 문학적 특성을 떠올리면서 어떤 기대감을 갖고 책을 집어 들지만, 해외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냥 ‘One of them’이다. 즉, 작품이 먼저 (소비자에게) 가고, 작가에 대한 관심은 책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진 다음에나 가능한 일인 것이다.

결국 ‘한국’의 ‘누구’라는 수식을 지우고 작품을 대해야 어떤 작가의 어떤 책을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나온다. 그래서 작품을 고를 때 국내에서의 인지도나 문학적 성과, 혹은 기성 작가냐 신예 작가냐 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냥 내게는 다 같은 선상에 있는 작가의 작품들이다. 독자가 한국 문화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어도, 이 작품이 문학이라는 하나의 예술 장르로서 그들에게 얼마큼 감동을 줄 수 있느냐. 여기에 경쟁력이 있는 것 같다.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예술성과 대중성, 접근성, 독창성 같은 것들.

외신에서 주목하는 한국 작가들
New York Times, The Guardian, BBC News 등 주요 외신들은 문학의 본토로 불리는 영미권에서 선전하고 있는 한국의 주요 작가들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현지에서 성공을 거둔 작품들은 모두 그런 인간의 보편적인(Universal) 감수성을 건드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보자. 한국 어머니들의 삶이라는 굉장히 한국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그 본질은 여성과 어머니, 그리고 모성에 관한 것이다. 국적 불문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보편성), 그리고 그중에서도 ‘한국의 어머니’는 어떠한가에 대한 새로운 경험(독창성)을 동시에 제공한다는 점이 그 작품만의 큰 경쟁력이 됐다.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도 같은 맥락이다. 그 짧은 동화책 안에 우주 만물의 질서가 다 들어 있다. 약육강식과 같은 자연법칙, 삶과 죽음, 성장, 만남과 이별, 또 전혀 다른 종의 새끼를 거둬 사랑으로 키운다는 설정에서 입양 가정에 대한 이야기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살아가는 과정에서 한 번쯤 마주하게 되는 철학적 물음들을 하나의 우화로 훌륭하게 풀어냈다. 이 작품을 해외 편집자들에게 소개할 때 바로 그러한 점을 부각시켰고, 그 결과 29개 나라에 수출되고 영국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폭력’에 관한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육식과 채식이라는 굉장히 특수한 상황을 가져와서 비유했지만, 주인공이 육식 대신 채식을 선택하는 행위는 결국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세상의 모든 폭력에 대한 거부다. 그런데 인간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어떤 폭력에도 무결하기가 쉬운가? 작가는 이 부분에 대한 물음을 소설의 결말에 주인공이 죽는지, 죽지 않는지 모호하게 서술하는 방식으로 독자에게 던진다. 이해를 이끌어내는 데 시간이 필요한 작품이지만 책을 덮었을 때 남는 그러한 질문이 이 작품을 까다로운 영미권 독자들에게 인정받게 한 비결이 아닐까.

 

유럽이나 영미권에서 잘 팔리는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아시아권에서 더 잘 팔리는 책도 있을 것 같다. 문화권마다 특별히 선호하는 경향의 작품들이 정해져 있나?

아무래도 영미 유럽의 경우는 다른 장르보다 문학이 발달돼 있다. 아시아권 독자들에 비해 문학을 체험해 온 역사 자체가 길다 보니 산업적으로도 굉장히 큰 시장이 형성돼 있고, 자연스럽게 일반 대중 독자들의 수준 또한 높은 편이다.

이 말은 곧 거기서 책을 만드는 편집자들의 수준 또한 마찬가지라는 얘기고, 따라서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수준의 작품은 일상적이지 않다. 김영하, 한강, 편혜영처럼 흔히 우리가 ‘예술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작가들의 작품이 영미권에 먼저 진출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문학의 본고장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거장들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시아권 독자들은 상대적으로 대중적 서사가 강한 작품들을 조금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중화권이나 동남아시아권은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소설이나 영화라든가, 혹은 영화나 드라마가 있고 그것의 시나리오나 극본을 소설화한 작품들이 인기가 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큰 범주 안에서 시장의 특성을 비교할 때 이야기일 뿐, 어느 나라든 작품성이 뛰어난 문학은 고유의 수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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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국내에서 주목받는 신진작가의 작품이 해외에서 출판돼 좋은 반응을 얻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특히 베트남 출판 시장을 개척하는 데 오랜 공을 들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까지 베트남에 수출된 한국 작가의 책들은 어떤 것이 있나?

사실 권 수로만 따지면 내가 베트남에 진출시킨 작품이 일본에 진출시킨 것보다 훨씬 많다(웃음). 양적으로만 많은 것이 아니라 그 장르도 아동 문학에서 성인 문학, 대중성이 강한 문학 혹은 예술성이 두드러진 문학 등 아주 다양하다. 단순히 시장에서의 성공을 기준으로 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아시아권에서 가장 다채롭게 한국 문학을 소개해온 나라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베트남을 꼽고 싶다.

당장 일본만 하더라도 판권 계약을 제안할 때 편집자들이 고려하는 요소가 생각보다 까다로운 편이다. 작품성이나 대중성 외에도 비즈니스적인 성공 가능성을 굉장히 많이 보기 때문. 반면 베트남은 상대적으로 작품의 다양성 측면에서 공략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 아직까지 한국 문학이 베트남에 진출해 베스트셀러에 오른 사례는 없지만, 가능성의 차원에서 굉장히 열려 있다. 기본적으로 한국 문학에 대한 현지 출판 관계자들의 관심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 작가의 작품들을 꾸준히 소개하는 출판사들도 여러 곳 있다.

앞에 나왔던 신경숙, 편혜영, 황선미 작가는 물론이고, 우리가 국내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봤던 한국 작가의 책들은 대부분 베트남에도 있다고 보면 된다.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 <비행운>, 김중혁 작가의 <당신의 그림자는 일요일>, 이경애 작가의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등등이 대표적이다. 안도현 시인의 동화 <연어>라던가,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도 반응이 좋다.

베트남에서 출판된 국내 문학작품들
이구용 대표의 손을 거쳐 베트남 현지에 출판된 국내 문학작품.
1.권비영, <덕혜옹주> 2.안도현, <연어> 3.이경혜,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4.편혜영, <홀> 5.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아직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베트남의 문학 작품을 직접 번역해서 국내로 수입하는 일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주로 어떤 책들을 소개하고 있나.

베트남 편집자들과 오랜 세월 비즈니스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베트남 문화, 그리고 베트남 문학 작품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내가 관심 가는 좋은 작품을 한 권, 두 권씩 들여오던 것이 이제는 그 수가 꽤 많다. 베트남 작가의 소설 작품을 내가 직접 에이전트로 영국에 판권을 수출시킨 사례도 있고(웃음). 아동 문학, 특히 그림책 판권을 한국에 수입해서 번역하는 작업도 많이 했고 지금도 진행하고 있다. 우리 문학작품을 소개하면서 내가 먼저 현지 편집자들에게 소개해 줄 만한 작가가 없냐고 묻는다.

베트남 현지의 역사, 정치, 사회를 잘 담은 문학 작품을 특히 좋아하고 국내에도 많이 소개하려고 노력한다. 우리 문학을 통해서 영미권 독자들이 좀 더 쉽게 한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것처럼, 베트남을 한국에 가장 잘 알리는 방법 역시 그 나라의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국내 독자들이 책을 읽고 공감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베트남의 현실이나 어떤 문화적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국에 출간 예정인 Tran Dan의 작품
국내 번역본 출간 예정인 베트남 민중 시인 Tran Dan의 장편소설. Tran Dan은 베트남의 유명 화가인 Tran Trong Vu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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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을 수출하는 데 있어 베트남을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시아권의 다른 국가들과 구별되는 베트남만의 시장성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2000년대 초반 동남아권 편집자들과 일을 시작하게 됐다.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이렇게 다섯 개 국가와 비즈니스를 진행했는데, 그중 베트남이 한국 출판물 전반, 특히 어학서적이나 수험서 같은 실용서에 대해서 굉장한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비문학 분야로 물꼬를 트고 난 뒤로 내가 지속적으로 국내의 문학 작품들을 많이 소개, 권유했고, 그중 영미 유럽권에서 성공을 거둔 작가들이 생기면 그 또한 추천을 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비즈니스 범위가 문학으로까지 확대된 거다.

최근에는 한국 기업이나 한국어, 한국의 대중문화 등 우리나라 자체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현지에서 정보를 습득하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다. 이전에는 오랜 시간 비즈니스를 거듭하며 쌓아온 이해도를 바탕으로 내가 그들이 관심 가질 만한 콘텐츠들을 추천했다면, 요즘은 그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문의를 해오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주목받는 작품들에 대한 정보를 많이 찾아보는 것 같다.

시장성의 측면에서도 베트남은 기회가 많은 곳이다. 인구수만 하더라도 그렇고, 그 인구의 절반 이상이 활발하게 경제 활동을 하는 30대 이상의 젊은 층이지 않나. 자연히 출판 시장을 움직이는 주 연령층도 10대에서 30대 사이의 젊은이들이다. 이들이 주로 관심을 갖는 자기 계발서, 에세이, 비즈니스 서적, 문학 등의 장르는 이미 많이 진출해 있다. 아직 전체 시장의 파이가 크지 않아 성과를 논하기는 이르지만, 한국과 한국 콘텐츠 소비에 대한 관심이 속도로나 양적으로나 매우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베트남은 잠재력이 매우 큰 곳이라고 할 수 있다.

Tran Dan 작가의 장남과 이구용 대표
Tran Dan 작가의 장남과 함께한 이구용 대표

 

기회와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점이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시장에 진출한지 20년 가까이 되도록 베스트셀러를 배출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분석하나.

정확한 이유를 분석할 순 없겠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양적인 측면에서 일본과 중국, 영미권에서 쏟아지는 출판 콘텐츠를 따라갈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정말 단순한 얘기일 수 있다. 인지도만 놓고 생각해 봤을 때, 그들에게 한국의 소설가보다 스티븐 킹이나 존 그리샴이 훨씬 익숙한 작가들이라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나. 이건 비소설 분야라고 다르지 않다. 현지 데이터만 봐도 어쩔 수 없이 증명되는 부분이다.

다만 한국 문화 자체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도가 늘어나고 있고, 한국 유학을 꿈꾸거나 한국 문화를 다룬 콘텐츠를 찾는 현지 독자들이 있기 때문에 향후 전망은 밝다. 당장 지금까지의 성과만 놓고 보면 아쉬운 점이 많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분명히 성장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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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관심도의 증가가 시장에서 증명 가능한 성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결국 시간 싸움이다. 조바심을 갖지 않고 그들에게 매력적인 방식으로 꾸준히 문을 두드려야 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우리가 내보내고자 하는 작가에 대한 ‘브랜드 이미지’를 탄탄히 구축해야 한다. 막연하게 ‘한국 문학’이라고 하는 장르를 만들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작가 한 명 한 명에 대한 팬덤을 키우는 거다. 한국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이 나왔다고 할 때, 그 작가의 이름을 신뢰하고 책을 구입하는 고정된 독자층이 형성돼 있는 것을 생각해 보라.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작가의 책이 최소 5천 부, 혹은 만 부 이상이 꾸준히 팔릴 수 있어야 한다. ‘이 작가의 책을 내면, 만 명은 사서 읽는다’라는 공식 같은 사례들이 자꾸 나와줘야 한다는 거다. 한국이 베트남 출판 시장에 진출한 지는 20년 가까이 됐지만, 그동안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가질 만큼 현지 독자들에게 스며들진 못했다. 이건 한국에 대한 관심도가 올라간다고 해서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경쟁해야 되는 건 결국 다양한 문화권, 수많은 국가에서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활동하는 작가들이다. 이들과 겨뤄서 이길 수 있는, 그런 뛰어난 작품을 자꾸 발굴하고 현지 편집자들이 설득될 수 있는 방식으로 팔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결국 우리가 그들과 비즈니스를 해온 시간에 비해서 모르는 게 많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전략적인 측면에서 어떤 점이 부족했다고 생각하나?

기본적으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 믿는 것보다 베트남에 대해 잘 모른다. 현지의 시장 상황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그곳의 독자들이 어떤 정서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이런 부분에서는 국내 업계의 접근 방식이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겉보기로 판단한 정보만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성사가 될 것도 안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우리가 한국에서 200원에 판매하는 책을 베트남에 수출하려 할 때, 현지 시장에서는 그 책에 대해 100원의 값을 매긴다고 가정해보자. ‘이 책을 100원에 판다면 기꺼이 사서 읽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당연히 협상 과정이 필요하다. 100원보다는 조금 더 값을 올리되, 200원보다는 저렴한, 양쪽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중간 지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때 합리적인 가격대는 130원에서 150원 사이가 될 것이다. 때에 따라서 만약 지금 약간 손해를 보는 것이 장기적인 비즈니스 측면에서 승산이 있는 거라면 과감하게 더 값을 낮춰서 현지의 조건에 맞추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다.

그런데 상당히 많은 사례가 이렇게 제대로 된 협상으로 나아가기도 전에 비즈니스가 결렬된다. ‘아무리 그래도 국내에서 이 작가가 가진 입지가 있는데 130원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혹은 백 번 양보하더라도 150원 밑으로는 절대 안 팔겠다고 (국내 출판 관계자들이) 선을 긋는다. 물론 이런 입장을 고수하는 데에는 출판사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또 그 간극을 조율하는 것이 에이전트의 역할이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상대편에서 제안하는 협상을 수용하지 못하면 그 기회는 다른 나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현지에서 진행된 여러 컨퍼런스를 통해 베트남 편집자들과 만났을 때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한국의 계약 조건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중화권이나 일본, 심지어는 영미 유럽권에서 요구하는 계약 조건보다도 높아서, 출판 계약을 하고 싶어도 못할 때가 있다는 것. 이 경우 편집자들은 비슷한 내용을 다룬 다른 나라, 이를테면 대만이나 중국, 일본의 책을 찾아서 그 책의 판권을 대신 수입해 온다. 바로 이 지점에 대해서 우리가 분명히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이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최근에는 이러한 경향이 다소 긍정적인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지 경험을 더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계약을 진행하려고 할 때에 왜 상대편에서 그런 조건을 제시하는지에 대해 귀를 기울이려고 하는 국내 편집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이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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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질문드린다. 앞으로 새롭게 개척해야 할 해외 시장이 많다는 측면에서, 비즈니스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지적은 굉장한 시사점을 주는 것 같다. 방금 이야기한 요소들이 개선된다는 전제하에, 향후 베트남에서 K-문학 콘텐츠 시장의 성장을 어떻게 전망하나?

과거에는 1년에 한 작품씩, 그것도 이름난 작가의 책만 영미권에 진출했다면 지금은 1년에도 굉장히 다양한 작가들의 여러 작품이 수출되고 있다. 콘텐츠가 밖으로 뻗어 나가는 빈도, 그리고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영미권에서는 신경숙을 비롯해서 많은 작가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2차 콘텐츠, 즉 영화나 드라마, 뮤지컬을 제작하고 싶어 하는 해외 제작사들이 많아지고 있고 그것을 접하는 현지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규모의 차이일 뿐 큰 흐름 안에서 이런 수요는 베트남도 마찬가지다.

비단 한국 문학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 관련 콘텐츠가 진출하는 속도 자체가 앞으로 더욱 빨라질 것이다. BTS 같은 K-POP 스타들이 해외에서 이끌어내고 있는 성과, 그리고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활용한 여러 콘텐츠들이 거두고 있는 성과 등등이 사실은 다 같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르로 구분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본다.

핵심은 그 흐름에 더 빨리, 안정적으로 올라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까 언급한 ‘타협할 수 없는’ 여건들 때문에 아깝게 기회를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우리에게 좋은 것이 그들에게도 좋아 보일 것이라는 어떤 일방적인 기대치는 조금 내려놓고, 현지에서 긴밀히 소통할 수 있는 파트너십을 갖추는 식으로 능동적인 비즈니스가 더 많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그와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지속적으로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능력, 더 다양하고 재능 있는 신진작가들을 발굴하려는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분명히 큰 성과가 따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마중물이 되고 싶은 마음이 크다,

KL매니지먼트 이구용 대표
KL매니지먼트 이구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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