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 한국의 '삼성'을 목표로 하는 베트남의 'VIN GROUP'
VEYOND는 베트남에 대한 살아있는 정보를 탐구합니다.
VEYOND는 베트남 트렌드의 흐름과 맥락을 전달합니다.
VEYOND는 베트남에서 펼쳐질 비전을 함께 고민합니다.

Report

한국의 ‘삼성’을 목표로 하는 베트남의 ‘VIN GROUP’

icon view1859 2020-09-21
Veyond 매거진

베트남 1등 기업, 빈 그룹

삼성은 원래 대구에 있던 작은 상회였다. 이병철 초대회장은 1950년 초반에 ‘제일 제당’과 ‘제일모직’을 연달아 설립했고 이후 다양한 계열사를 통해 큰 성공을 거뒀다. 삼성의 핵심이라고 불리는 삼성전자 매출은 2018년 기준 230조원 대이며, 이는 대한민국 예산의 60% 수준이다.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전문 업체 인터브랜드(Interbrand)의 조사에 따르면 삼성의 현재 가치는 611억 달러가 넘는다.

빈 그룹은 원래 라면을 팔던 회사였다. 초대 회장 팜 니얏트 브엉(Pham Nhat Vuong)은 1993년 우크라이나에서 ‘테크노 컴’이라는 식품 회사를 창립했고 베트남식 라면을 팔아 크게 성공을 거뒀다. 빈 그룹은 지난해 ‘베트남 500대 기업(VNR500)’ 중 6위에 올랐다. 국영기업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1위로, 베트남 최대 민간기업이다.

한국 언론은 빈 그룹을 종종 ‘베트남의 삼성’이라고 부른다. 단순히 쉽게 설명하려고 붙인 수식어만은 아니다. 빈 그룹처럼 삼성도 식품으로 시작해 유통, 건설 등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이후 삼성은 제조업에 역량을 총동원했고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의 절반 가까이를 공급하는 글로벌 제조 대기업이 되었다. 빈 그룹 역시 현재 스마트폰과 자동차 제조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에 ‘삼성 래미안’이 있다면 베트남에는 ‘빈홈’이 있다. 현재 빈 그룹은 48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건설과 유통 이외에도 학교, 병원까지 사업분야를 확대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사업과 자동차 산업에도 진출했다. 베트남 사람들은 ‘하루를 빈 그룹으로 시작해 빈 그룹으로 끝낸다’고 말한다. 그만큼 빈 그룹이 베트남에 끼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베트남 빈 그룹
명실상부 베트남 대표 기업, ‘빈 그룹’

‘오버 더 동남아’를 꿈꾸는 빈 그룹의 야심찬 계획

조 스터드웰의 저서 ‘아시아의 힘’에서는 2차 대전 후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동아시아 국가들을 두 그룹(한국, 일본, 대만,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포함한 동남아)로 나눈 뒤, 어떤 차이가 동북아 국가들의 강력한 경제 성장을 견인했는지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동북아 국가들은 국가 주도의 농업 육성을 통해 잉여생산을 얻은 뒤 이 잉여분을 토대로 제조업을 육성한다. 정부는 이 육성기업들을 수출시장으로 내몰면서 동시에 인프라 구축과 세제혜택, 금융 지원 등을 아끼지 않는다. 정부의 지원 아래 성장한 수출 기업들은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다시 첨단산업으로 부가가치를 높여간다. 육성된 대기업에 납품하는 하도급업체들의 기술력도 덩달아 발전하며 고부가가치 기업으로 성장한다.

삼성과 엘지의 과거 로고
과거 일본의 하청 기업이었던 삼성과 엘지(과거의 금성)

​동남아의 여러 국가들은 동북아 국가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 동남아의 유명 대기업들은 수출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보다는 폭넓은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꾀했다.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말레이시아는 정부 차원에서 프로톤이라는 국영 자동차 회사를 만들었지만 지속적인 적자로 결국 중국에 매각됐다. 태국은 1960년대부터 일본산 자동차 생산기지로 자리를 잡으며 현재 전 세계 12대 자동차 생산국이 됐지만 자국 생산기업을 만들어내진 못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아세안 제조기업들은 동북아 제조 대기업 국가들의 납품업체에 그치고 있다.

빈 그룹의 방향은 확실히 동남아가 아닌 ‘동북아’ 국가의 방향을 따르고 있다. 빈 그룹은 2017년 9월, 완성차 제조업체인 ‘빈패스트’를 설립했고 2018년 10월에 열린 파리 모터쇼에서 세단과 SUV 모델 차량을 선보이며 기대를 모았던 빈패스트는 이듬해 6월, 15억 달러를 들여 조립공장을 완공하고 양산차 파딜을 인도했다. 이후 빈패스트는 Lux S2.0(세단)과 Lux SA2.0(SUV)을 차례로 인도하며 본격적인 ‘베트남 표 자동차 시대’의 막을 열었다.

빈패스트의 차량들
다양한 차종을 선보이고 있는 빈패스트(VIN FAST)

응우옌 빈 그룹 부회장은 “빈패스트의 성공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도로 인프라 개선이 이뤄지고 베트남 국민들이 구매력이 오르면 빈패스트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며 “빈패스트는 국제적 품질을 갖춘 베트남 자동차 브랜드여서 자국 고객들의 환영을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빈 그룹은 ‘빈스마트’를 통해 2019년 3월 Vsmart를 선보이며 스마트폰 시장에 본격 진입했다. 빈 그룹의 이러한 결정은 일반적인 동남아 국가들과 확실히 다르며, 빈 그룹의 변화를 알리는 본격적인 신호였다. 브엉 회장의 측근으로 경영의 중심 축을 맡고 있는 응우옌 비엣 꽝(nguyen viet quang) 부회장은 빈 그룹이 “향후 10년 안에 기술과 산업을 핵심 기반으로 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선언했다.

빈스마트의 핸드폰들
트렌디한 디자인의 Vsmart

쉽지 않은 ‘동북아 모델’의 길

베트남의 많은 사람들이 ‘국민 자동차’ 빈 패스트 구매 대열에 합류했다. 빈패스트도 생산 첫해에 25만 대의 차량을 판매한다는 계획을 내세웠다. 하지만 도로에서 빈패스트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남은 것은 소비자들의 불만뿐이었다. 큰 사고에도 에어백이 펼쳐지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원인 모를 고장이 잦아 불편하다는 이야기가 속속들이 전파됐다.

고장이나 사고로 인한 서비스 대응도 미흡했다. 지난 10월 말 빈 패스트 럭스(LUX A2.0) 세단을 구매한 한 소비자는 수리비로 무려 2500만 원을 청구 받았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대외 여건도 그리 좋지 않았다. 2018년부터 아세안 역내 관세가 사실상 폐지되면서 수입차 가격이 저렴해졌다. 품질 좋은 외제차를 탈 수 있는 베트남 국민 입장에서 빈패스트 차량 구입은 치르기 비싼 애국심이었다

나무에 부딪혀 손상된 차량
작년 8월 일어난 사고. 현지 언론은 ‘빈페스트 차량의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스마트폰 역시 크게 고전하고 있다. 빈 그룹의 야심과는 다르게 작년 10월까지 빈스마트의 시장점유율은 2%에 불과했다. 현지에서 거의 먹혀들지 않고 있던 상황이었다. 결국 빈스마트는 작년 8월 출시한 자사의 ‘Vsmart Live’을 두 달 만에 반값으로 할인했다. 또 빈그룹의 고급 아파트를 구입한 고객들에게 무료로 스마트폰을 지급했다. 이런 식으로 무료 스마트폰을 지급받는 빈홈즈의 부동산 고객들은 10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베트남 내 빈스마트 점유율
하지만 아직 Vsmast가 갈 길은 멀다. 그래프는 2019년 기준 베트남 스마트폰 점유율. ⓒGfk

작년 3분기 기준, 빈 그룹의 제조업 분야 매출액은 4조 5000억 동(약 2286억 원), 영업손실은 4조 6900억 동(약 2382억 원)으로 매출액보다 영업손실액이 더 컸다. 여기서 빈 패스트의 적자액은 작년 기준 지난해 2730억 동(약 137억 원)에서 올해 9월 현재 1조 597억 동으로 5배 이상 대폭 늘어났다.

신용평가사 S&P는 빈 그룹 부채 총액이 작년에 130조 동(약 6조 6000억 원)을 넘어섰고, 2020년이면 155조 동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S&P는 빈 그룹의 자동차 사업 진출에 대해 “막대한 초기 투자금이 들어가는 데다, 사업 초기에는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평가하며 투자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빈 그룹의 또 다른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지난 7월부터 빈 그룹에 대한 신용평가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빈 그룹이 피치가 요구한 객관적 재무자료를 제출 거부했기 때문이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이미 2018년부터 빈 그룹의 투자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한 바 있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은 빈 그룹의 재무 상태를 의심하고 있다.

최근 빈 그룹 주가
근래 가장 낮은 주가를 보이고 있는 빈 그룹

일련의 상황에 대해 응우옌 부회장은 “이미 예견했던 일”이라며 “자금이 많이 투입되는 제조업에 새롭게 진입하는 것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라고 우려를 일축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빈 그룹이 신규 산업에 총력을 기울이기 위해서는 다른 데서 ‘총알’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이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빈 그룹의 주력사업이자 ‘총알’인 부동산 사업이 흔들리고 있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빈 그룹의 고급 아파트들은 내놓기가 무섭게 팔렸다. 빈펄리조트또한 외국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2019년 하반기부터 베트남 부동산 경기가 하강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부동산 거품론이 힘을 얻으면서 시세를 올렸던 외국인들이 투자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 부동산 시장에서 외국인의 입김은 절대적이다. 고급 부동산 프로젝트의 경우 외국인에게 할당된 물량 30%만 다 팔아도 ‘본전을 뽑는다’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베트남 부동산이 정점을 찍었다고 보고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판매수수료 인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분양 상태인 하노이 빈 홈스 스마트시티가 대표적이다.

“하노이 스마트시티가 빈 그룹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소문이 커지고 있으며, 신규 사업들이 제때 자리를 못 잡다 보니 자금 운용이 힘든 것으로 알고 있다”

김용익 코스카 대표, 글로벌 이코노미 인터뷰 中

 

빈 그룹은 정말 베트남의 ‘삼성’이 될 수 있을까?

​작년 12월, 빈 그룹은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 걸 하겠다’며 자사의 주력 유통부문인 빈 마트(대형마트)와 빈 마트 플러스(편의점), 그리고 빈 에코시스템(농산물 유통)을 소매유통기업인 마산 그룹에 약 2조 4천억 원의 금액을 받고 매각했다. 전국에 깔린 약 2600여 곳의 빈 마트 매장을 포기했다. 빈 마트는 빈스 마트의 주요 유통경로이기도 했다. 이어 전자상거래 플랫폼 어 더 이조 이와 가전유통 매장 빈 플로 사업까지 철수한다는 뜻을 밝혔다. 자사가 구축해놓은 유통 플랫폼을 대거 포기한 것이다.

빈 그룹의 유통사업 정리나 항공산업 진출 철회는 심상치 않아 보인다. 물론 보도자료에는 기술·산업분야에 집중하기 위해 성장 전략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시장은 빈 그룹이 하이테크 산업 진출로 인해 유동성 위기가 발생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고부가가치 사업으로의 이행이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복잡한 제조 공정, 품질을 유지할만한 기술력, 원가 절감 노하우, 사후관리 등이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지 않으면 안착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빈 그룹은 자동차 산업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빈 그룹뿐만 아니라 베트남 전체의 이해관계도 걸려있기 때문이다. 앞서 ‘아시아의 힘’에서 소개했듯 ‘개발도상국’이 한 단계 더 높은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수출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소화할 제조 대기업을 육성해야 하며 이를 중심으로 하나의 산업 생태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한국은 이미 그 과정을 소화했고 삼성과 현대 같은 글로벌 대기업을 배출했다. 베트남의 더 큰 도약을 위해 그런 대기업이 필요하며, 빈 그룹은 가장 가까운 후보다.

​결국 ‘동북아’ 식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술력이 오르고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빈 그룹이 최근 유통사업을 정리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에 베트남 정부도 빈 그룹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베트남 산업 당국은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기 위해 수입되는 원료에 대한 면세, 국내에서 구매한 부품에 대해 특별 소비세 면제, 자국 차를 구입하는 소비자에 대한 대출 혜택 등을 고려 중이다.

인구통계적 전망도 밝다. 2017년 기준 베트남의 자동차 시장은 약 33만 5천 대에 불과하다. 베트남의 국책 연구기관인 산업·무역 정책·전략 연구소(Vietnam Institute of Industrial and Trade Policy and Strategy; IPSI)는 베트남 자동차 시장이 오는 2025년까지 연평균 22.6% 성장하면서 연 170만 대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했다. 베트남의 빠른 경제성장과 인구 증가는 폭발적인 자동차 수요를 이미 예고하고 있다.

오토바이 타는 사람들
이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살 수 있는 구매력을 갖춘다면?

전문가들도 빈 그룹의 위기가 장기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예측한다. 단기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지만 그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든 과정이 지난 다음, 사람들은 빈 그룹의 이 순간을 어떻게 평가할까. 빈 그룹은 정말 기존의 동남아 모델이 머무르지 않고, 그토록 숙원 하던 베트남의 ‘삼성’이 될 수 있을까?


to to top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