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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족한 베트남의 농경문화가 만들어 낸 ‘지참금’ 문화

icon view5101 2021-04-22
Veyond 매거진

한국에서 베트남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는 국제결혼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남성의 결혼 상대방으로 중국 국적이 가장 많았지만 언젠가부터 중국보다는 베트남 국적의 여성이 많아진 분위기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국제결혼에 관한 자료(2019)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가 점차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풍족한 베트남의 농경문화가 만들어 낸 지참금문화

​그러나 국제결혼에 대해서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이 존재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은 대부분 타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생겨난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같은 한국 사람끼리 결혼하더라도 가족끼리 내부 문화가 다르면 남편과 아내는 서로 충돌이 발생하지 않던가. 그런데 국적부터 다르고 언어마저 다른 상황의 국제결혼 부부라면 서로를 이해하기란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국제결혼에 대한 심각한 오해와 편견 중 ‘지참금’이 있다,

대체 ‘지참금’이란 무엇인가

지참금의 사전적 정의란 결혼을 할 때 신부나 혹은 신랑 쪽 집에 돈을 주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새신랑이 신부 집안에 거금을 주는 모든 행위를 ‘지참금 문화’라고 보며 동남아시아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풍습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새 신부가 남편 집안에 거금을 지불하는 인도가 좋은 예시이다.

이렇듯 신랑과 신부 어느 쪽이 상대 집안에 돈을 주는지는 각 지역의 문화에 따라 다른 편이다. 하지만 베트남의 경우 신랑 측이 신부 측에게 지참금을 주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러한 문화를 접하기 힘든 대다수의 한국인은 지참금이라는 낯선 문화를 돈을 주고 여자를 사 온다는 매매혼으로 오해하기 쉽다.

풍족한 베트남의 농경문화가 만들어 낸 지참금문화
국제결혼이라서 지참금이 있는 것이 아니다. 베트남 남자도 지참금을 지불해야 한다.

결혼에 큰 비용이 든다는 점에서 한국의 집-혼수 문화와 베트남의 지참금 문화는 동일하지만 방향성이 크게 다르다. 처가는 신랑에게, 시가는 신부에게 결혼에 대한 직접적으로 대가를 원하지 않는다. 양 집안은 거금을 들여서 집과 혼수를 준비하지만 그것은 시가와 처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신혼부부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즉, 기본적으로 내리사랑이라는 말이다.

한국의 결혼 문화
양가의 지원이 주가 되는 한국의 결혼 문화

반면 베트남은 다르다. 처가는 신랑 측에게 베트남 현지 근로자 기준 몇 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지참금을 요구하며, 결혼생활에 필요한 전반을 준비하는 것은 남성의 몫이다. 왜 이런 문화가 발생했을까?

​조선시대의 농사짓는 모습하면 흔히 남성이 떠오른다. 하지만 베트남의 경우 여성 혼자서도 농사가 가능했다. 기후가 온난하고 물이 풍부한 탓에 채집과 농사에 높은 생산성을 보인다. 위협적인 짐승도 별로 없으며 겨울이 적거나 없어 집을 짓는데 에너지가 적게 필요하다. 자급자족을 위한 농사라면 모내기할 필요도 없이 볍씨만 뿌려두면 잘 자라며 생장속도도 빨라서 일 년에 3모작까지도 가능하다.

​베트남의 전통 모자인 “농”을 보면 이러한 맥락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농”이란 애초에 농사지을 때 햇빛을 가리기 위한 용도인데, 베트남은 여성이 농사를 맡았기에 여성용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간혹 관광객으로 간 외국인 남자가 여성용 농을 쓰면 현지인들이 주변에서 웃으면서 좋아하는데, 서양인 남자가 한국에 와서 볼에 연지 곤지를 찍는 일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일하는 베트남 사람들
비슷해 보이지만 여자가 쓰는 ‘농’이 따로 있다

여성이 단독으로 자녀를 부양하고 키워나가는데 문제가 없어지는 경우, 남성의 근력이 식량생산에 필수적인 요소가 아닌 부수적인 요소가 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여성이 주도권을 가지는 모계사회가 탄생한다.

모계사회에서는 중요한 결정을 할머니가 하며 실질적인 집안의 가장은 어머니이다. 자연히 남성의 사회적 역할이 적다. 게다가 집안의 중요한 결정도 여성들이 하니 남성들은 의무도 없지만 권한도 없는 수벌 같은 느낌이 강하다. 이러다 보니 모계사회에서는 역설적으로 남성이 가정에 충실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현대 베트남에서도 시골 지방으로 가면 남성에게 바라는 것이 “아프지 말고, 바람피우지 않는 것”을 두는 경우가 꽤나 있는데 이러한 문화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다시 지참금 문화로 돌아오자. 모계사회에서는 여성, 특히 젊은 여성이 핵심적인 경제적 기반인데 결혼으로 인해 젊은 여성이 집안을 이탈할 경우 막대한 경제적 타격이 발생한다. 이러한 타격을 보상해 주는 차원에서 신랑이 지참금을 내는 문화가 발달한 것이고 데릴사위로 남자가 처가로 들어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누구라도 내야 하는 것이다.

풍족한 베트남의 농경문화가 만들어 낸 지참금문화
모계 사회의 영향으로 탄생한 지참금 문화

​일반적으로 가부장 사회는 남존여비, 모계사회는 여존남비의 경향을 지니며 둘의 차이는 자연환경에 기반한 것이다. 물론 전통적인 베트남 농경사회일수록 모계사회가 강하게 남아있고, 현대화된 도시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많이 옅은 편이다. 이 글을 읽다 보면 마치 베트남의 남성들은 게으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도시화가 덜 된 시골에서나 그럴까 대도시에 가깝고 나이가 어릴수록 남성들은 지참금을 마련해서 결혼을 하거나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경우도 많다.

개인적인 일화로, 호찌민에 거주할 당시 우연찮게 친해졌던 30대 초반의 배달기사가 있었다. 베트남의 결혼연령은 한국보다 빨라서 일반적으로 남자는 20대 후반에 결혼을 한다. 이런 이유로 당연히 그가 결혼을 한 지 알았으나, 알고 보니 미혼이었다. 그의 고향은 캄보디아 근처의 국경지대가 고향이었고, 위치적으로 다소 낙후된 지역이었다.

시골에서 배웠던 일은 농사뿐이었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호찌민으로 왔지만, 지식도 기술도 없는 그가 호찌민이라는 대도시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리가 없었다. 20대 초반에 호찌민에 왔고 10년간 다양한 일을 해오면서 열심히 살았지만, 호찌민의 빈부 격차를 극복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도 역시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했지만 지참금조차도 마련할 수 없는 형편이었기에 그저 웃으면서 담배만 같이 폈던 씁쓸한 기억이 떠오른다.

글쓴이 차태호
베트남이 좋아서 베트남에 대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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