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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작가는 ‘한국 청년’들의 고민이 ‘베트남 청년’에게도 유효할 것이라고 말한다

icon view1062 2020-09-21
Veyond 매거진

지금 이 순간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베트남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전체 인구 9,500만 명의 절반 가까이가 청년세대인, 국민 평균 연령 30세의 나라. 1986년 개혁개방 정책 실시 이후 태어나 자란 ‘도이머이’ 세대는 베트남 사회의 핵심 경제활동 인구로 성장해 베트남 내의 여러 굵직한 사회 변화들을 주도하고 있다.

베트남 도이머이 세대 커플
‘새로운’ 베트남을 만들어가고 있는 도이머이 세대

혹자는 이러한 ‘인구 황금기’의 베트남을 1970년대 산업 부흥기 대한민국에 비교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전통을 고수하는 부모 세대와 생활양식도, 사고방식도 전혀 다른 도이머이 세대 사이에 존재하는 여러 경제, 문화적 간극은 오늘날 한국의 86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청년 사이에 발생하는 여러 갈등 요소와 유사한 점이 많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밀레니얼 세대 작가 정지우의 사회비평 에세이집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가 베트남어로 번역 출간이 결정된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1980년대 후반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이자, 소위 ‘낀 세대’로 불리는 30대 청년인 동시에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 다양한 작가의 정체성으로 바라본 한국 사회의 초상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을까.

​작가 정지우와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라는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처음부터 한 권으로 완성된 형태의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사실은 굉장히 다양한 시간대를 공유하는 글들이 모여 있다. 짧게는 책이 나오기 몇 개월 전에 쓰인 글부터, 길게는 3~4년 전에 쓰인 글도 있다.

​여기 실린 글들은 주로 나 자신이 한때 속했었고 지금도 아직은 속해있다고 말할 수 있는 ‘청년세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요즘 시대의 주목할만한 문화적 현상들에 대해 내가 생각하고 느낀 점들을 담고 있다.

요즘 20대, 더 나아가서 10대들이 사회의 문화적 양식을 누리고 대하는 태도나 방식은 그들과 같은 밀레니얼 세대로 분류되는 나와 동년배 세대와도 굉장히 다르다.청년기를 지나오면서 그런 다름이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거나 매도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고, 이 괴리를 어떻게 분석하고 이해해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남겼던 글들이 2,3년 치 모이자 책 한 권의 분량이 됐다.

인스타 책 절망이 없다 내지
출간 이후 청년들의 많은 공감을 사고 있다

​출간을 염두에 두고 쓴 글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나의 덩어리로 모이는 방식이 명쾌하다. 책의 꼭지를 ‘소비’, ‘젠더’, ‘공동체’라는 세 개의 키워드로 구성한 것은 온전히 편집자의 역량이라고 봐야 하나?

맞다(웃음). 나도 내가 그동안 써온 글들이 그렇게 명쾌하게 카테고리화 될 수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내가 페이스북을 비롯해서 여기저기 파편적으로 올려둔 글들을 재료로 편집자님이 복사, 붙여넣기를 통해 하나의 완성된 요리로 탄생시킨 거다. 그동안 여러 권의 사회·문화 비평 서적들을 출간했지만, 이렇게 흩어져 있던 글들을 수집해 엮는 방식으로 책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의도했던 것은 아닌데 <인스타그램> 출간을 준비하며 느낀 건, 세상을 포착하는 데 있어서 꼭 롱테이크 방식으로 써 내려가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단편들을 모아 묶은 이 책에서처럼 순간순간 포착한 스냅샷들을 죽 늘어놓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상을 더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만약에 기획하는 단계서부터 정해진 하나의 렌즈(관점)가 있고, 거기 맞춰 글을 쓴다고 가정하자. 이런 과정에서는 현상들을 취사선택하게 된다. 그렇게 내가 선택한 관점과 주제에 걸맞은 현상들로만 채워진 책은 그 자체로만 보면 완결성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왜곡된 세계관이 될 위험성이 있다.

​사회가 변화하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그만큼 하나의 사건이나 현상을 구성하는 인과적인 축도 더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더 정확하게 포착하기 위해서는 길고 굵은 서사보다는 장면 장면들을 스케치 해나가는 방식의 서술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절망이 없다 정지우 작가
시대의 다양한 ‘순간’을 담고 있는 글들

원래 판타지 소설 쓰는 게 꿈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실제로 쓴 책들은 ‘판타지’와는 매우 거리가 먼, 철저히 현실 세계에 발을 둔 글쓰기에 가깝다.

환상 문학에 대한 꿈을 10대 때부터 꽤나 오랜 시간 품었었다. 매일 입시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두 시간씩 소설을 썼을 정도. 이영도나 어슐러 르 귄, 테드 창의 소설 같은 작품을 쓰겠다는,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막연한 이상을 가지고 대학에 입학했다.

제대 후에야 그것이 얼마나 모호한 꿈인지를 알게 됐다. 그런 글을 써도 시장이 너무 작아 유통되고 소비될 경로가 없기 때문에, 내가 꿈꿔왔던 종류의 글쓰기를 하면서는 도저히 생계를 이어갈 수 없겠더라. 문단 내에 마술적 사실주의 같은 환상소설을 쓰는 작가들도 있었지만, 내 취향과 맞지 않았다.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된 거다.

그렇게 방황하던 20대 중반 즈음에, 평소 문학 다음으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회철학, 비평철학의 영역에서 내가 쓸 수 있는 것들이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좋아하는 글쓰기와 잘하는 글쓰기는 달랐던 건지 소설 쓸 때보다 무척 잘 써지더라. 3주 만에 책 한 권이 완성됐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게 스물여섯 살 때 쓴 <청춘 인문학>(2012)이다.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는 생각에 계속 책을 썼고, 여기까지 왔다.

도서 청춘 인문학 독자 리뷰
다양한 청춘에게 영감을 주었던 <청춘 인문학>

스스로를 ‘청년기를 졸업하고 있는 나이’라고 표현하던데, 그런 의미에서 요즘 젊은 세대에 대한 관찰을 넘어 작가 본인의 고민들이 담긴 기록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맞다. 결과론적으로 환상소설을 꿈꾸던 나와 비평을 하는 나 사이에는 분명한 균열이 있지만, 전혀 다른 듯 보이는 그 두 정체성이 실은 굉장히 맞닿아 있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어떤 가상의 세계에 대한 판타지를 가지고 있다는 건 그 자체로 현실에 대한 약간의 불협화음, 즉 내가 이 세계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속적으로 꿈꾸는 이상향이 있고, 그 세계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곳이라면 말 그대로 그 ‘간극’에서 어쩔 수 없이 보이는 현실 사회에서의 비판점들이 있는 것 같다. 문화비평가로서 글을 쓰고 있는 내 정체성이 그 간극으로 설명될 수 있다면, 이 책에 실린 글들 역시 그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불안을 잊기 위한 수단으로 청년들이 ‘소비’하는 것을 택한다는 분석이 인상 깊었다. 불안할수록 더 돈을 쓰고, 이를 SNS에 전시함으로써 일시적인 자기 위안을 얻는다는 거다. 여기서 재밌는 사실은, 이러한 ‘상향 평준화된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데에도 경제력에 따른 양극화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런 아이러니를 어떻게 봐야 할까.

애초에 소득 수준에 따라 경험할 수 있는 것의 범주와 경계가 너무 뚜렷하다 보니 그럴듯하게 연출한 이미지마저도 본질적인 격차를 벗어날 수 없는 거다. 비단 인스타그램에서만의 문제는 아니고, 그런 상향 평준화된 이미지를 선망하고 소비함으로써 어떤 ‘주류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받으려는 경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상향 평준화된 이미지에 대한 선망 자체보다,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간극의 불합리함을 청년세대가 우리 사회의 기본값으로 이미 받아들이고 있다는 데 있다.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깔고 가기 때문에 한정된 파이 안에서 서로 상처 입히고 상처받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때 떠오르는 기준이 ‘공정성’인데, 나는 ‘공정성’에 대한 오해가 최근 사회문제 대부분의 핵심이라고 본다.

‘공정성’에 대한 오해?

‘공정성’이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공허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모두에게 공정한 시스템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사람들은 수능이나 공채 시험이 가장 공정한 제도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강남 8학군에서 한 달에 백만 원 하는 학원 다니면서 자라는 아이와 집안 사정이 어려워 하교 후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아이가 단순히 같은 시험을 친다는 이유로 공정하다고 할 수 있나.

물론 공정성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마저 확보되지 않는다면 너무나도 불행한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타고난 경제력과 계급의 차이, 재능의 차이 등등 출발선을 달라지게 하는 모든 요소들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대신, 기계적인 공정함에 절망적일 정도로 의지하고 있다. 그래야 좁아진 문에 발 하나라도 더 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점수로 평가받고 줄 세워지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져 왔기 때문에, 시험 점수로 환원될 수 없는 ‘공정’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완벽한 공정 표현
정지우 작가는 완벽한 ‘공정’이 환상이라고 말한다

이런 현상이 밀레니얼 세대로 자란 청년들 특유의 ‘개인주의’와 관련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무엇이 그러한 개인주의를 만들었는지를 봐야 한다. 그 이면에는 생존에 대한 절박함이 있다.

가령, 한국 사회에서 남성을 생각해보자. 서른 이전에는 적당한 직장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압박감, 그러지 못하면 평생 도태될 것이라는 두려움, 결혼시장에서 내가 원하는 사람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능력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어떤 능력주의.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종용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차별을 정당화하고 서로 적대시하는 제로섬 게임을 지속하게 만든다.

결국 이 본질적인 지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구조의 문제다.

여자 사진 아이폰 메세지 화면

​잘못된 ‘공정함’을 둘러싼 갈등을 끝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제대로 분노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증오가 아니라 정확한 대상을 향해 제대로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 언젠가 칼럼에서 썼던 이야기인데, 지금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모습을 보면 모두가 벼랑 끝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절벽 끝에서 누군가를 먼저 떨어뜨려야만 내가 살아남는다는 절박함이 만연해 있다.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 이 절박함에 대한 공감대를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내가 겪는 불합리가 특정 성별이나 내 개인의 역량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그것을 개선해야 나의 불합리도 함께 해소될 수 있다는 이해가 필요하다. 그렇게 공존하며 대화할 수 있는 대지를 만드는 작업이 선행돼야 우리가 분노해야 할 대상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을까.

정지우 작가는 무차별적인 적대감을 해소하기 위해 ‘구조’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가 국내에서는 벌써 3쇄를 찍었고, 곧 베트남 현지에도 번역·출간된다. 소감이 어떤가.

나도 출판사로부터 소식을 듣고 굉장히 신기했다. 베트남 출판사에서 이 책을 출판한 한겨레 출판사로 직접 연락이 왔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로 내 책을 알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책의 제목이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인스타그램 자체가 전 세계 청년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SNS 중 하나이고, 거기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다양한 정서적인 맥락들을 이 책의 제목이 잘 함축하고 있어서 베트남 청년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물론, 우리나라의 청년 세대 이야기가 전혀 다른 환경에 있는 베트남 청년 독자들에게 얼만큼 가 닿을 수 있을지 걱정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베트남 독자’에게 유의미한 지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실 생각해보면 과거 한국도 일본 청년세대에 대해 다룬 책들을 굉장히 많이 수입하던 때가 있었다. ‘희망이 없는 나라의 젊은이들’, ‘득도 세대’ 등 일본사회가 청년세대를 부르는 용어가 한동안 우리나라 청년들을 묘사하는 데 인용되기도 했고. 비슷한 맥락에서 베트남 사람들 역시 요즘 한국사회의 세태라던지 한국 청년들의 모습을 통해서 자국 청년세대들에 대한 고민도 더 풍성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표면적으로는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사실 베트남도 중국처럼 왕성하게 시장 개방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국가적인 특성을 많이 갖추고 있지 않나. 자본주의가 고도화하면서 이미 전 세계 청년들이 경험하는 현상들이 많이 보편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 등장하는 조금은 거시적인 차원의, 소비사회라던가 ‘상향평준화된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들은 꼭 ‘한국사회’라는 전제를 깔지 않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지점들이 많이 있을 거라고 본다.

무엇보다 이 책이 한국이라는 국가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어떤 균형감각을 얻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단순히 케이팝과 박항서의 나라가 아니라, 어떤 나라, 어떤 시대, 어떤 세대든지 현실 속에는 굉장히 다양한 모순과 아이러니가 존재하고, 그 속에서 나름대로의 가치를 찾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는 걸. 한국 청년 세대들의 그런 애씀들이 베트남 청년들에게도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

정지우 작가 사진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정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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