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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배경, 풀벌레 소리… 베트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

icon view4614 2022-03-28

‘그린 파파야 향기’는 국제적 명성을 얻은 베트남 영화로서 1993년 칸느 영화제 황금 카메라상을 수상했으며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단순히 베트남 영화라고 보는 것은 다소 섣부른 규정이기는 하다. 이 영화는 베트남 다낭 출신의 프랑스 이민자였던 트란 안 홍 감독이 10대를 프랑스에서 보내며 영화교육을 받은 후 연출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기준에서 보면 프랑스 영화라고 해야 하는 것이 더 적당해 보이지만 베트남 출신의 감독과 베트남어, 베트남인의 과거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개봉 당시에도 지금도 한국에서는 대체로 베트남 영화로 분류되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베트남의 과거를 지금까지의 대중 영화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감독은 베트남 전쟁 이후 라오스, 프랑스로 이주했기에 체제 내부의 시선으로 과거를 바라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린 파파야 향기’에서 주목해 볼 만한 부분은 이 영화를 베트남 관객들을 위해 만들었다기보다는 당시 식민 모국이었던 프랑스 영화인들을 상상적 관객으로 두고 만들었고 그러한 면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관객들이 한 때 자신의 식민지였던 베트남이라는 낯선 동양의 이미지를 익숙한 자신들의 영화 문법으로 구현한 것에 상당한 호응을 보여준 것이다.

그린 파파야 향기 포스터(출처: 다음영화)

이 영화는 1951년 여주인공인 어린 무이가 남부 사이공의 한 집안에 시종으로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영화의 전반부는 무이가 집안 내에서 겪는 일들과 관찰하게 되는 일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주인집 부부는 아들만 셋을 두었는데 어린 시절 죽은 딸이 하나 있어 부인은 비슷한 또래인 무이를 자애롭게 대한다. 남편은 주로 악기를 연주하며 소일거리만 전전하는 무기력한 사람이고, 시어머니는 2층에서 불공만 올리고 있다. 그래서 부인은 포목상을 하며 집안의 생계를 책임진다. 어린 셋째는 종종 무이를 괴롭히지만 부인과 다른 시종 아주머니의 보호 속에서 무이는 별탈없이 지낸다. 어느날 주인집 남편이 돈을 모두 들고 집을 나가 집안이 곤란해지고 이후 시간이 지나 돌아온 남편은 병으로 사경을 헤맨다.

이 영화가 국제적인 성공을 거둔 데에는 아름다운 촬영 기법 그리고 효과적인 사운드의 활용과 같은 영화적 성취가 주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재단사였던 감독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마치 어릴적 추억을 들춰내듯 베트남 전통의 실내 공간을 수려한 색채로 그려내었고, 각종 풀벌레 소리와 같은 사운드를 공들여 사용함으로써 이국적 공간을 생동감있게 구현해 내었다. 프랑스에서 스튜디오 촬영을 했음에도 모기장과 전통 격자창 너머로 아련하게 보이는 집안 장면은 다양한 소품들이 전통음악들과 어우러져 과거 베트남으로 관객들을 공간 이동시켜 준다. 베트남 정부의 허락을 얻지 못해 현지 촬영을 하지 못했던 점이 결과적으로는 스튜디오라는 갇힌 공간에서 그리움의 정서를 좀 더 깊이 있게 전달하게 만든 셈이다.

1951년 그리고 다시 10년 후

이 영화에 대한 국제적 호응은 분명 역사의 미학화에 기대어 있다. 이 영화의 초반부 배경이 되는 1951년은 2차 대전 이후 일본이 물러나고 프랑스가 다시 남부 베트남을 점령해 호찌민을 중심으로 하는 북부의 베트민(베트남의 공산주의적인 독립운동단체 겸 정당)과 프랑스 사이의 인도차이나 전쟁이 전개되던 시기였다. 또한 후반부의 배경이 되는 1961년은 2차 인도차이나 전쟁(베트남 전쟁)이 진행되던 와중이었다. 프랑스의 패망 이후 남베트남과 미국 간 정전협정이었던 제네바 협정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여기에 명시되었던 남북 통합 총선거를 치르지도 않았다. 공산화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미국이 서서히 베트남에 개입하게 되는 시기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명확한 시대적 상황에도 화면 속에는 전쟁이라는 배경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열심히 먹이를 구하는 개미나 각종 식물에서 배어 나오는 즙, 파파야의 생명력 넘치는 씨앗을 바라보는 무이의 시점샷은 사실적인 묘사를 넘어 자연주의적 상징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이 모든 가족 내의 충돌과 갈등들이—결국은 모든 사회적 갈등들에 비유될 수밖에 없는—긴 시간을 두고 보면 인간이 자연 속의 생물로서 조화를 이루어 가는 과정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임신을 한 무이가 읽는 책의 내용 속 비유가 이 영화의 서사 전략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힘찬 대지의 고동은 강한 파문을 낳고 그들의 부딪힘은 더 큰 파문을 낳지만 그것은 생명을 위한 준비. 조화로운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사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리라.
(중략)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아무리 변화가 심하다 해도 버찌나무의 모습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서사 전략들은 오랫동안 반식민주의 전쟁을 지속했던 베트남 사회의 갈등을 희미하게 만들어 색과 소리로 미학화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사를 영화에서 완전히 지워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10년 후 무이가 집을 떠나는 날 쓰러지는 부인을 그리는 장면에서 굉음으로 들려오는 전투기 소리가 오버랩되는 것처럼 말이다. 왜냐하면 관객들의 감상이 달라진다 할지라도 감독은 그 시대의 영향에 대한 나름의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역사가 대중문화를 통해 뒤틀린 방식으로 스스로를 서술하는 방식이다. 전투기의 굉음과 함께 무이에게는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집을 떠나 첫째 아들의 친구인 피아니스트 쿠옌의 집의 시종으로 들어가 그와 사랑에 빠지고 그로부터 글을 배우게 된다.

피아니스트 쿠옌에게 글을 배우는 무이

그런 맥락에서 전반부의 가족 관계도 단순히 추억으로만 읽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우선 눈길을 끄는 부분은 주인 부부 남편의 무기력함이다. 주인집 남편은 어떤 경제활동도 하지 않고 가족 내의 일에 관여하지도 않는다. 그저 악기를 연주하다 종종 돈을 들고 떠나 집안을 곤란하게 할 뿐이다. 그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장면은 죽은 딸에 대한 그의 말이다.

그 얘기는 그만해. 차라리 저세상에 있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는 여러 장면에서 무책임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지만 그보다는 미학적 인물로서 현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온당해 보인다. 그는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할 수도, 독립운동에 투신해도 이상하지 않은 인물로 그려진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서 감독은 어떤 힌트도 주지 않은 채 아버지를 모호하게 처리한다. 어린 두 아들의 이야기들 역시 주목해 볼 만하다. 걸레를 빤 물을 엎어 무이를 괴롭히는 셋째나 개미를 촛농에 가둬 죽이는 둘째 모두에게서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반발심과 뒤틀린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셋째가 장사를 이어받아 현실적으로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을 해소한다면, 둘째는 글을 쓰러 떠나 버린다.

이런 가족 관계에 대한 묘사로부터 당시 남베트남의 지배층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읽어낼 수 있다. 이전 글에서 다루었던 영화 ‘디자이너’에서는 체제 내의 시점에서 그들의 사치와 철없음을 도덕적으로 비판, 계몽하고 있었지만 ‘그린 파파야 향기’에서 그들은 좀 더 복잡하고 모호하게 그려진다.

모호하다는 것 자체가 입장이 복잡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베트남 전쟁 이후 나라를 떠난 이들은 통일과 공산화에 대해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못하는 입장에 처해버렸기 때문이다. 전투기 소리 이후 무이가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나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저 자연의 조화를 향한 충돌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할 뿐이다.

그것은 식민모국 프랑스의 관객들 역시 일정 정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결국 아버지의 무기력과 냉소는 역사 속에서 패망한 이들이 지닐 수밖에 없는 어떤 상처이다. 그 결과 단단한 정체성을 잃고 저 너머 아름다움의 세계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것은 단지 아버지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뿌리를 잃은 감독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이 영화 속에 유독 예술가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감독은 인터뷰에서 자신은 베트남과 베트남의 역사보다는 동양에 관심이 많다고 이야기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는 프랑스에 정착해 감독으로 성공했지만 그의 마음 어딘가는 아마 보트피플의 그것처럼 세계의 어딘가를 떠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쓴이 이가
서사 의존적인 인간의 삶과 사회,
그리고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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